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국내도서
저자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 김정아역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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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과 미학의 선구자 발터 벤야민이 사진에 대해 쓴 글들을 모으고, 벤야민 연구자 에스터 레슬리의 해석을 붙인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탁월한 사진 비평가이자 이론가, 사진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지각을 문체로 구현한 철학적 사진작가, 어린 시절 엽서를 장식한 사진에 매료된 사진 수집가 벤야민을 만날 수 있다. 


벤야민에게 사진이란 당대 기술과 예술이 집약된 새로운 매체이자 정치적 전망의 창이었다. 벤야민은 사진이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을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인식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진에 찍히는 현실이 눈이 보는 현실과 다른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강경한 사진 반대론자였던 보들레르에 비해, 벤야민은 기존 예술이 감춘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매체로서의 사진, 가짜 아우라가 제거된 사진에 포착된 시대상과 인물상에 주목한다. 


벤야민은 사진의 재현적 기능과 폭로적 기능에 주목하면서 사진의 정치적 가능성에 천착한다. 현실을 기만적으로 재현하거나 이상화하는 기존 예술에서 벗어난 사진에 심층으로 파고드는 설명글을 붙이는 방식을 통해 사진에 ‘혁명적 사용 가치’가 있을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책에 실린 벤야민의 어린 시절 사진과 그가 수집한 사진, 당시의 인물들의 사진, 사진엽서에 얽힌 그의 추억을 통해 사진이라는 놀라운 매체가 가져온 여러 변화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 교보문고 제공 책 소개 -


발터 벤야민의 책을 하나도 접해보지 않고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기... 책속에 인용된 여러 학자들과 다른 글의 제목이 많아서 뭐가 뭔지... 하면서 읽었다. 솔직히 내용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았음. 단계적으로 지금의 내가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 같다. 제목만 보고 입문서인 줄 알았다. 아니면 진짜 출판사에서는 그렇게 상위 개념의 책이 아니라고 낸 건데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 에스터 레슬리의 머릿말을 읽고 적은 것이고 벤야민의 글을 쉽고 흥미롭게 읽어졌다. 


발터 벤야민은 전공을 배우면서 알게 된 인물로 단지 그뿐이었다. 2014년 광주 비엔날레의 전신이 되어 '호랑이의 도약'이라는 용어를 모티브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최근 비엔날레 팜플렛을 읽어보면서 한 번 그의 글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도서관에 신간도서란에 꽂혀있길래 빌려왔다. 드디어 시립도서관의 연체의 늪에서 벗어남.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발터 벤야민 광주 비엔날레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14년에만 인용된게 아니라 꾸준히 인용되어 왔었구나... 그만큼 오늘날의 예술 담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 중 하나지만... 난... 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책은 이 책을 엮은 에스터 레슬리의 책에 대한 머릿말 그리고 책에 실린 7편의 벤야민의 글과 각각의 글에 대한 머릿말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세계지나 보그 같은 곳에서 올라온 벤야민의 글들을 엮은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만 칼럼같은 글이었을까? 화보 신문 무죄!의 경우에는 프리드리히 브루셸의 장파울 서거 기사를 반박한 짧은 글이다. 


브루셸은 서거 기사에 실리는 기념 사진을 보고 개탄했다. 장 파울의 작은 사진과 같은 페이지에 삽입되어진 별 볼일 없는 사진들... 그 예시로는 어마어마하게 차려입고 깃털과 모피를 뽑내는 두 창녀와 고양이 두 마리, 원숭이 한 마리도 있다. 그가 사랑했던 작은 동물들이 그의 곁에 함께 실리면 좋았을 것이라고 끝나는 글을 벤야민은 신랄하게 반박한다. 주간지 표지에 장 파울 머릿통 보다는 재미없는게 어딨냐면서 '재미'를 뽑아 내려면 장파울의 머리통을 작게 실을 수 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프티부르주아적인 이념 나부랭이를 떠드는 것 보다 현재성의 아우라를 머금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가치있고 길게 보면 더 보람찬 일이라고 이야기 한다. 현재로서는 전혀 논의 되어지지 않는 이야기 일텐데 막 사진과 언론이 발달할 시기여서 그런가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반박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벤야민이 카를 블로스펠트의 예술의 원초적 형태들을 읽고 쓴 서평도 서평쓰는 스킬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한 문장을 쓰고 갑자기 자괴감이 든다. 난 진짜 이정도 표현으로 밖에 글을 못 쓰겠다... 서평 읽고 굉장히 짜임새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추구하고 싶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쓰인 글.... 다만 '서평을 쓴다는 것은 사교 기술 같은 것이다. 서평가가 무슨 소리를 하듯 건강한 독자는 콧방귀를 뀔 뿐이다.'로  글을 시작해서 첫 부분은 다소 쌩뚱맞다고 생각했는데 벤야민이 글의 포문을 열 때 자기가 쓰고 있는 글의 장르적 기원과 속성을 성찰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을 읽고 느낀 결론 벤야민은 정말 내가 추구하고 싶은 글을 쓴다는 것... 


문학세계의 편집장이였던 빌리 하스는 벤야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학세계의 고정 필자 중 내가 가장 높이 평가했던 이는 발터 벤야민이다. 누가 봐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단순한 박식가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말로든 글로든 하나의 주제를 다룰 때 유추나 은유나 정의를 끌어다 붙이지 않았다. 마치 출구가 막힌 동굴에 보물을 감추고 있는 땅속 요정이 탈출한 구멍을 파 나가듯 그의 문제의 핵심으로부터 파 나가는 고된 방식을 취했다." 


과연 역사라는 체스판 밑에 숨어 있는 키 작은 꼽추가 그를 대신해서 체스말을 옮겨 주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벤야민을 읽기 위해서는 그 질문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벤야민 읽기의 매력이자 위험이다. 미세먼지보다 유독한 광고 이미지의 아우라를 흡입하며 살아가야 하는 독자에게 "생의 표충을 복제하는 것은 생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파시즘의 구호가 새삼 오싹함을 안겨주는 지금이다. - 옮긴이의 말 


차차 그의 글도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야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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