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산 여행을 마치고 제제와는 첫 약속이다. 오랜만이면 오랜만이다. 벌써 여행을 다녀온 지도 2주나 지나있다니 시간 진~짜 빠르다. 그리고 제제를 만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막학기를 남겨두고 1년 휴학할 생각을 하고 있고 아직은 확신은 없지만 아무래도 휴학을 하게 될 것 같다며. 도무지 졸업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학생이란 신분에서 벗어나기 싫다. 1년의 시간 동안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하고 싶은 걸 찾아가고 싶고 이미 생각해둔 것도 있고 아빠가 그걸 지원해주신다고 했다. 같이 여행을 다녀올 때만 해도 졸전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우리 어쩌면 졸업하기 전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겠다. 끔찍한 소리 하지마. 이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만나지 않은 2주 동안 그런 결심을 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직 졸전 기획서는 짜여지지 않았고 현재 짜여진 졸전조도 추후 수정될 수 있다고 했지만 제제와 나는 같은 조였고 졸전을 참여하는 모두가 우린 졸전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인지가 되어있고 암묵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세트로 통했고 나도 같은 전시구역을 맡아서 함께 전시를 기획했으면 했구... 제제도 나도 졸전을 한다면 너랑 하고 싶지. 그치만 도무지 안 되겠어. 1년간 휴학하면서 졸전도 최대한 참여하지 않을 방향을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전공에 대해서 이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제제와의 여행에 대한 글을 썼었다. (제제는 제제가 일하는 카페에서 쓰는 이름이다) 제제에게는 부끄럽고 또 오글거려서 이런 글을 썼고 이런 사진이 들어갈 것 같다고 얘기만 했고 오늘 만나서 보여주려고 했다. 마침 오전에 대표님께 카카오톡 채널 메인에 내가 쓴 글이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해줘서 그것도 함께 보여주려고 했다. 난 이미 그 글의 마지막에 4년간 여행도 함께했고 어쩌면 졸업전시라는 여행도 같이 하게 될거라고 썼는데... 당연히 제제가 하는 모든 결정에 응원하고 내가 아쉽다는 이유로 제제가 하는 결정에 관여할 수는 없고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의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2.

제제와 만나면서도 계속 합격문자를 기다렸다. 분명 오늘 면접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는데 3시, 4시가 지나도 도무지 연락이 오지 않아 그래... 아무래도 떨어졌나보다 했다. 중간에 함께 지원했던 리에게도 아직 문자 못 받았냐고 연락왔었고 설마 둘 다 떨어진건가 상심했었다. 그러다 제제랑 헤어진 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합격문자를 받았다. 연이어 리에게도 합격했다는 카톡이 왔다. 

합격했다는 이야기에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제제의 휴학 소식도 전했더니 리가 내게 선구자라고 칭해주었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너가 우리 학번 중에서는 사회에 가장 먼저 발을 내밀게 되는 선구자가 되는거라고 어쩌면 쓴맛을 가장 먼저 맛 보게 될 텐데 소감이 어떠냐며 표현이 너무 웃겼다. 

정말 그렇다. 소수과라서 처음부터 과의 인원이 열여명으로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어떻게 되다 보니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5는 넷뿐이였다. 자퇴도 한 동기도 있고 편입한 동기도 있고 유학 가버린 동기도 있고 제주도에서 일하는 동기도 어학연수를 간 동기도 다녀온 동기도... 각기 다른 이유로 휴학하거나 과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제제의 휴학 선언으로 남은 건 이제 셋. 그중에서 리는 1학기가 더 남아있는 상태고 유일하게 졸업식을 함께하게 될 다른 언니는 대학원을 준비중이니 졸업하고 소속이 없어지는 건 나뿐이다. 이렇게 될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3.

작년 전시 뒷풀이의 일을 기억한다. 전시를 참여한 동기들 중에 나를 포함해서 동기 넷과 간단히 치맥하려고 모였었다. 치킨을 먹다가 다른 친구가 자기는 이 과에 와서 도슨트도 전시도 경험해보았으니 이젠 정말 미련이 없다. 자기는 먼저 떠나겠다라고 자퇴 선언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무모하다는 생각을 먼저했다. 나라면 이왕 3년간 수업 들은게 아까워서 졸업까지 마치고 갈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열정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반짝반짝 빛났던 눈이... 그날 치킨을 먹으면서 거짓말 같은 종현의 소식도 함께 들었고 동시대를 함께했던 우리는 다소 침울해진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전시를 하면서 전혀 준비되지 못한 나를 마주해서 인지 더 잘할 걸 이라는 후회 때문인지 친구의 자퇴 선언 때문인지 생각지도 못한 종현의 소식 때문인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이제 정말 다른 의미로 남게 되는건 나뿐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걸까? 흡사 서바이벌의 생존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정말 살아남은걸까? 리와는 서로를 응원하고 앞으로 5개월간 잘 부탁한다고 하고 이야기가 끝났다. 5개월간 편집자이면서 작가로 참여하면서 한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들이 순식간에 불어나버렸다. 이 많은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일단 닥치는대로 뭔가를 하고 있긴 하다. 이 뭔가를 차근 차근 해내나가다 보면 내길도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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