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컨셉진 에디터 스쿨 2주차 수업을 받으러 2주 째 서울로 향했다. 첫주에는 무려 밤을 샜음에도 불구하고 시립미술관에서 2시간 동안 전시도 보고 수업이 끝나고는 땡스북스에 들려 책도 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땡볕에 대단하다.
오늘도 이왕 서울까지 가는 김에 전시를 보려고 했고 국현에 방문했다. 여기까지 온 교통비를 의식하고 자연스레 뭐라도 하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도무지 전시를 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집중도 되지 않고 그냥 너무 피곤했다. 저번주 처럼 잠을 자지 못한 것도 아닌데...역시 전시는 억지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이 동할 때 보러가는 거나보다. 전시를 보다 한숨 붙이고 싶다는 생각에 보다 말고 만만한 만화카페로 향했다. 수업 끝나고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카페 맞은편에 육회비빔밥 음식점이 보이길래 그 근방에서 아점까지 해결했다. 푹 잠들어버릴까봐 잔뜩 예민해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수업을 들으러 향했다. 중간에 잠들긴 한 모양이다. 한결 가벼워지긴 했다.
2.
사실 이렇게 수업 도중에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기록을 남긴다면 수업을 다 마치고 다 정리된 상태에서 하고 싶었다. 하지만 편집장님께 1주차 과제였던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완벽한 데자뷰를 느꼈다. 어쩌면 그렇게 계속 지적을 받는 지점이 내 좋지 못한 악습관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일종의 아집같은 것일까봐... 그래서 그것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저번 봄학기 전공 수업에 더 본격적으로 기획안 쓰기를 몸 소 배웠다. 과제는 총 다섯 가지가 있었다. 본격적인 전시 기획안을 쓰기 전에 이전에 있었던 전시들을 년도별로 분류하고 내가 생각한 컨셉과 부합한 전시들을 찾아보고 실제로 전시를 한다고 가정하며 작품들을 꼽아보는 등의 과정을 먼저 거쳤다.
단순분류는 괜찮았는데 전시와 작품들을 선정하는데 있어서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특정 맥락과 꽂혀버린다는 것이다.
3.
잘못된 기획안의 예시를 들자면 내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한다고 함. 목적이나 기획의도까지는 ok.
근데 여기에 난 이런 작품들을 가지고 온다.
1. 잠을 못 자게 방해하는 베개를 벽에 건 작품. 가운데에 스피커에 소음이 나오고 베개에는 불면증의 기록이 쓰여있음. -> 이걸 이 시대 젊음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은유한 것이라고 함.
2. 가상의 인물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 50개들를 형상화한 조형작품. ->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
3. 저지대에 서있는 사람들과 그 위의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불평들을 표현한 작품. -> 때론 부조리함에 맞서는...
진짜 이렇게 정리하니 보인다. 2번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는데 1,3 그게 왜 힘든 청춘 작품이냐고 극딜하셨다. 어찌어찌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지만 내 말에 관람객도 설득을 당할 것 같냐고.. 그리고 작가의 작업노트를 읊지 말고 내 관점을 가지고 작품에 대해 말하라고... 따흑 진짜 제대로 털렸다.
그 과제 하기 전에는 임의 전시 컨셉을 잡고 기존에 있었던 전시를 분류해보라는 과제가 있었다. 식사,안부를 연결지어 생각한 컨셉으로 분류 한건 ok 또 다른 컨셉으로는 아이러니가 있었는데 일단 컨셉 부터가 부적절. 너무 애매한 컨셉이고... 솔직히 그걸로 분류하면서 나도 설득할 수 없었는데 남을 설득하려함 ㅠㅠ... 함께 소개하고 싶은 전시들이 있는데 공통점을 잡지 못한 것(여기서 부터가 문제), 특정 작품에 꽂혀서 작품에 대해 구구절절 아야기 하며 설득하려고 한 것. 내가 꽂힌 작품 중 하나는 현실 풍자하고 고발하는 작품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레지던시 작품이 라는 점(작가들이 작품을 자유주제로 완성하고 공통되는 주제를 나중에 붙이는 경우가 많음) 레지던시는 전시 컨셉을 잡아 분류하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형식의 전시라고 하며... 그리고 있어보이는 제목에 꽂히지 말라고 했는데 딱 그게 그꼴이라고... ㅠ-ㅠ
변호 아닌 변호을 먼저 마지막 전시 기획안은 그래도 칭찬 받으면서 수업을 마쳤다.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 좀 만 더 다듬으면 졸전 기획안으로 써도 손색없다고 했음. 덕분에 바닥을 치던 자신감도 붙었지만... 사실 그건 제제랑 같이 기획한 것이라 제제가 나의 그런 점을 상쇄시켜 주어서 가능한 게 아니였다 싶다.
4.
마찬가지로 이번에 기사 기획안도 최근 읽은 책 한 권에 꽂혀서 그러한 부분을 함께 실고 싶었다. 내가 기획하면서도 위에서 실수했던 사례들이 스쳐지나갔는데 막상 기획안 쓸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획안의 목적부터 편집장님이 읽으면서 땡-... 기획안에서 질문이 계속 나오면 좋지 못한 기획안이라고 하셨는데 끊임 없이 내 기획안을 보고 물으셨고 나는 내가 왜 이런 기획안을 썼는지 설득하기 위해 계속 답했다. 내 이야기는 똑같은 지점을 맴돌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영감을 받은 부분은 책의 구성이라서... 그게 바로 발상의 함정이라면서...
편집장님에게 그렇게 지적 받는 건 솔직히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 보다 이전에도 지적받았던 부분과 같은 지점이라는 게 생각이나서 그게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내지는 앞서서 말했던 것 처럼 그게 나의 아집처럼 비춰질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추어지는 내 모습이 마치 나에게는 자질이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이어져서...
항상 난 내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이걸 일요일날(이틀째 이걸 쓰고 있어서...) 그러니까 오늘 리를 만나면서 물어보았다. 리야... 너가 보기에 내 주관이 없어보이니? 리의 대답은 엥 그럴리가. 주관 뚜렷하지... 아주 뚜렷하지...
근데 나도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이게 주관보다는 고집으로 바꾸어도 위화감 없고 스스로가 고집이 있는 성격이라고... 이게 특히나 내가 쓰는 글이나 기획안 같은 데서도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라고... 과제 한 번으로 땅굴까지 들어가서 내 자아성찰을 제대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내 고집 보다는 나만의 색이나 확고한 존재감과 같은 좋은 방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