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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의 자서전 내지는 인터뷰집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읽어보니 이때까지의 자신이 몸담아왔던 이력들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읽는이로 하여금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한 팁들도 함께 쓰여져있다. 제목과는 전체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내용이라서 책을 읽으면서 일본 원제가 뭔지 궁금했는데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한다. 한글판 제목은 굉장히 추상적인 느낌... 제목에서 다시 한 번 요즘 트렌드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디자인 역시 이전에는 보지 못 한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독서 이력이 짧아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푸른색으로 채색되어진 수채화풍의 표지처럼 본문 역시 푸른색 잉크로 새긴 느낌의 폰트로 이루어져있다. 안에 있는 저자의 포트폴리오도 푸른색 이미지... 흑백의 이미지 보다는 훨씬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폰트가 그래서 가독성이 이러면 떨어지지 않을까 노파심으로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책을 읽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되었는지 부터 이때까지 해왔던 일들에 이야기 그리고 왜 이런 작업물들이 만들어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짜여진 템플릿 마다 컨셉을 달리한다는 거나 어떤 디자인이 보는이들에게 더 많은 효과를 줄 수 있는지 생각했던 과정들을 읽으면서 창작의 고통... 특히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지점도 있었다.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는데 마지막에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가 좋았다. 뻔한 이야기 일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위안을 얻게 되는 것 같다.
* 꿈이나 목표에 매진하는 젊은 세대는 응원받는다. 반대로 목표가 확실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의욕이 없다고 오해받기도 하니 괴로울 것이다. 젊을 때 꿈을 확실하게 갖지 못하면 세상의 흐름에 뒤쳐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좇을 게 있는 사람은 괜찮은 존재로 여겨진다'는 생각에 눈앞에 있는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꿈으로 정해버릴 때도 있다. 나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20년 넘게 일을 해오면서 생각했다. '젊은 세대는 눈에 뻔히 보이는 길을 가지 않는 데서 오는 불안을 더 긍정적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꿈. 이 아름다운 단어에 짓눌려버리는 꿈도 있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던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그 신선한 기분을 계속 품고 싶다는 마음이 진정한 꿈이었음을 안다. 꿈이라고 하면 앞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 경우에는 뒤안길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디자인'이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꿈'이 곁에 다가온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 느낌을 젊은 세대에게도 전하고 싶다.
*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꼭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마치 반작용과 같습니다. '일'이라는 거센 작용으로 단련되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반작용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뿐일지 모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내면에도 어떤 '작용'이 일어나길 바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