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표정
국내도서
저자 : 손수호
출판 : 열화당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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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서관에 다녀왔다. 사실 오랜만이랄 것도 없다. 다 읽지도 못한 책을기간이 다 되어서 반납하러 다녀온 것이니까. 정확히 2주만이다. 정말 책 한 권 읽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책 한 권도 다 읽지 못하는 집중력을 가진 나... 


책을 반납하고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책을 보다가 공공미술이라는 키워드에 홀린듯이 집어들었 던 것같다. 이제 내년에 대학생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대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전공에 대해서 보다 더 주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 했지 실천하기엔 어렵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차피 대학교 가서 다 배울 건데 어때?란 핑계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고. 어쨌거나 그 필요성에 대한 대안으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먼저 접해보자- 인데 그 역시도 내게는 버거운 감이 있다. 진짜 나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내게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저자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지명도가 높은 조형물에 대한 얽힌 스토리를 소개하고 문화적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아무래도 공공미술은 정치와 사람들의 이해타산과도 얽혀있어서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공미술의 순기능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보았던 조형미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작품 자체의 심미적 요소는 물론 주변 환경과의 조화, 시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풀어져 있어 굉장히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1. 욕망이 충돌하는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권력이 꿈틀대며 부딪치는 상징공간이다. 쿠테타에 성공하려면 광화문을 차지해야 했고, 대통령 당선자는 이곳에서 국민들에게 인사한다. 시위대들이 몰려드는 곳도, 국토대장정의 종점도 대부분 광화문이다. 정도전이 한양을 설계한 이후 늘 그랬다.


광화문광장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국가의 상징가로서 광화문-시청-숭례문에 이르는 길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공공장소에 공적인물을 세우는 것은 어떤 상징적 의미을 지니고 있는지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해마다 이승만 동상과 박정희 동상 건립은 논란거리고,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광장은 그 어떤 곳 보다도 권력 다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는게 흥미로웠다. 현재는 그런 이런 저런 이유로 문화적 영역으로서 광장을 둘러싼 도시조경에 힘쓰기 보다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광화문광장은 이미 과밀상태. 채우지 말고 덜어내야 한다는 말도 인상깊었다.



2. '평화의 소녀상'은 왜 강한가



평화의 소녀상은 글쓴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조형상으로 꼽았다. 나 역시 여러 매체를 통해서 평화의 소녀상은 보았지만 더 깊게 파고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조각가의 장인정신에 놀라고, 단순해보이지만 하나하나 치밀하게 이루어진 조각가의 구성에 놀라고 무엇보다 평화의 소녀상의 그림자는 쪽진 한 할머니로 보여진다는게 소름돋았다. 동상의 가장 기본이되는 전달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좋은 작품은 미적 가치를 넘어서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조형물의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조형물을 통해서 역사의 아픔을 기억할 수 있는 장치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뜻 깊은 것같다.



3. 청계천의 발원을 알리는 '샘'


그렇다면 성공적인 조형물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작품에 내재된 고유의 심미성과 장소 적합성,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소통력을 들 수 있다. 심미성의 경우 작가의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 장소성은 작품이 설치되는 현장의 지리적 특성 혹은 역사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소통력은 작품 선정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민주적 절차가 필수적이다.


청계천을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 <샘>은 이들 조건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데 제격이라고 하였다. 스타 작가 올덴버그 부부의 합작품인데 초기에는 소통력의 부재와 여러 문제들로로 미술인들의 반발을 샀으나, 청계광장 주변의 집회가 잦고 관광객이 즐겨 찾으면서 나름의 명성을 굳혀가고 있으며, 조금씩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4. 노동의 경건함을 일깨우는 '해머링 맨'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작품으로 해머링 맨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한국에서 여럿 호평을 받고 있다. 키 칠십 이 피트 (이십이 미터) 몸무게 오십 오톤의 거인으로 하루 열일곱 시간 동안 삼십 초 마다 한 번 씩 망치질하는 동작을 취한다. 해마다 보수비를 비롯해, 보험료, 전기료 등 유지하는데 비용도 상당하다. 족보로 따지면199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앞에 세워진 해머링 맨이 첫 번째, 십이 년 후 이보다 더 큰 일곱번째 서울 동생에게 기록을 내주게 된다. 그럼에도 서울의 해머링 맨이 더 빈약해 보이는 건 독일은 넓은 광장에 서울은 도심의 협소한 건물 옆에 세워졌기 때문. 그래도 서울의 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형물 주변에 시민광장을 조성했고 그 때문에 작품이 더 더욱 사랑받을 수있었다. 이토록 미술품에 대한 기업과 행정기관의 배려는 전례 없는 것이다. 보로프스키 작품의 특징은 꿈을 지향한다는 점. 국경이나 도시, 인종을 넘어 해당 공동체 구성원의 의식과 감응하면서 소통을 추구하는 게 브로프스키 작품의 매력이다. 



5. 문화역서울 284, 추억의 곳간


KTX 신역사 개통 이후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소멸한 구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문화역'은 복합문화공간의 지향점을, 사적번호 284는 역사성을 담지한다. 식민시대의 아픔과 근대문화의 새로움이 중첩되는 추억의 곳간이기도 하다.  



6. 건축 + 아트 프로젝트, 서울스퀘어


최근 미생 드라마의 세트장으로 일명 장그래 빌딩이라고도 불리우게 된 서울 스퀘어. 수많은 빼곡한 창문들을 바둑판 한 알 한 알로 표현한 연출을 인상 깊게 보았다.


국내 최대의 오피스 빌딩이자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던 이 건물은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7년 외국계 자본인 모건스탠리가 인수하며 새로운 운명에 맞게 되고, 이 년간 대대적 리모델링 끝에 2009년 11월 '서울스퀘어'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서울역에 내 딛었을 때 처음으로 보게되는 이 대우건물이 주는 압도적인 위엄, 무겁고 딱딱한 모습을 지우기 위해서 유리 건물로 리모델링하려 했으나, 경제 개발의 역사성을 내포한 건물의 이미지은 어느정도 유지하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려 기존의 칙칙한 고동색 타일을 걷어내고 테라코타 타일로 단장하니 한결 산뜻해졌다.  


국내 최초의 '건축=아트' 프로젝트를 구현해 미술빌등으로 거듭, 빌딩 안팎을 유명 미술품으로 완전히 감쌌으며, 서울스퀘어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건물 전면을 캔버스로 활용하는 미디어 파사드. 현대미술의 영역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스펙터클의 현장이다. 건축물을 통해 시민들에게 예술을 소개하고 체험할 기회를 주는 동시에 도심의 새로운 경관을 조성하는 등 공공미술의 몫을 수행함은 물론이다. 



7. 로댕갤러리 혹은 플라토


숱한 화제를 몰고 온 로댕 갤러리는 2011년 5월 개명을 선언했다. 새로운 이름은 '플라토' 지질학적 용어는 '퇴적층' 기존의 문화적 성과에 새롭게 보태면서 끊임없이 지층을 형성하겠다는 취지다. '고원'이라는 뜻도 있다. 이름을 바꾸는게 삼성일가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로댕 갤러리와 플라토의 차이점이라던지 로댕의 여러가지 명작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8. 제프 쿤스, 백화점에 입점하다


신세계 백화점 본관 옥상 정원 '트리니티 가든'에 즐비한 세계적인 명품 조각들. 알렉산더 칼더, 호안 미로, 루이스 부라주아, 헨리 무어, 제프쿤스 순으로 이름난 작가 다섯 명의 작품들이 근엄하고 착좌하고 있다. 그중 별도의 공간을 차지한 제푸쿤스의 <세이크리드 하트>는 새 정원의 주인공으로, 현대 미술의 거장 혹은 악동으로 평가받는 작가가 직접 설치한 화제작이다. 사소한 일상의 소재에 키치적인 테크닉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현대 미술의 주류에 편입한 재주꾼으로 스펙터클과 해학, 단순함 속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장점이자 특징이다. <세이크리드 하트>는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짙은 보라색 포장지로 꼭 싸맨 후 금색 리본으로 장식한 모양. 제목인 '세이크리드 하트'는 기독교에서 중심하는 '성심'의 뜻을 지녔으며 겉으로는 지극히 가벼운 초콜릿 포장 같지만, 포장지를 뜯어내면 인간에 대한 신의 지극한 사랑을 드러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비평가를 위한 것일 뿐 <세이크리드 하트>는 분명 백화점의 구매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9. 예술이 투숙하는 보안여관


보안여관을 설명하기 앞서서 상촌 북촌 서촌 여러 지명들이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었는데 서울 사람이 아닌 나에게는 좀 많이 생소한 감이 있었다. 서촌이 오늘날 왜 서촌이라고 불리는지, 서촌의 지리적 특징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었다. 어쨌거나 아홉 째로 소개하는 공공미술은 서촌의 보안여관. 여러 변화의 중심에서 묵직한 추를 내리고 있는 통의동 보안여관은 간판의 유래는 정확히 모르나 본시 여관은 사람들이 머물고 떠나는 나그네를 위한 곳이니, '편안을 지킨다'는 뜻은 숙박업의 옥호로 제격 아닌가.  


이곳을 가장 자주 들락거린 부류는 시인과 화가와 같은 예술가들이였으며 문학과 미술사의 중요한 장면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연출된 것이다. 오랜 기간 수많은 사연을 잉태한 이 여관은 2007년 들어 숙박업을 접고, 이리 저리 거쳐 '예술이 쉬어 가는 문화숙밥업소'로 명명하고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0. 신도림을 밝히는 '붉은 리본'


디큐브시티에 더욱 강력한 임팩트를 던진 <보텍스> 영국의 설치작가 론 아라드의 작품이다. 'vortex'가 소용돌이이고, 여기에 'text'가 붙으니 메시지의 소용돌이가 펼쳐지는 것이다. 나선형 띠를 타고 색색의 영상을 보여 준다고 해서 '리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마땅히 편히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아쉽다고 했다. 글쓴이가 내린 결론은 디큐브파크 중심 광장에 세우면 좋겠다는 것. 아름다운 영상물아래서 '리본'이 여러 인연을 묶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그 영광은 디큐브시티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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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써내려가보았지만 결국엔 목차 하나하나 요약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쓴 손수호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에서 공공미술 투어(?)도 해보고 싶다. 굉장히 뜻깊을 것같아 

서울에 한 번 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하는 지방인의 설움...ㅠ_ㅠ 

다른건 모르겠는데 서울에서는 대방면으로 여러 문화생활을 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암튼! 이 책을 읽고 언젠가 서울에서 공공미술을 테마로 이곳 저곳 방문하고 싶은 곳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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