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개월간 광주 청년이 함께하는 광주 가이드북 만들기 대장정의 과정이 목요일로 끝이 났다. 왜 목요일이냐는 표현을 쓰냐면 일기를 미뤄쓰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1일 1일기를 써보자라는 마음 가짐과는 달리 지키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종강하고도 특별할 것도 없이 폰게임만 두드리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그럴 때면 사람이라는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게 실감이 난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하는데 (몇년째 다짐이나 항상 다짐에서 끝이 난다)
수료식에서는 짧은 전시도 함께 있어 수료식 시작시간보다 조금 일찍 만나서 전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사랑의 단상'팀으로 '사랑의 단상'이라는 테마로 배너를 만들어 지역평생교육페스티벌에서 전시했었다. 그때 전시물들을 받아서 벽에 걸고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받아 아이무비로 간단하게 만든 영상을 함께 디피했다. 배경음악으로는 메이플스토리 행복한 마을 테마로 곧 크리스마스라서 잘 어우러지는 추억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책방약방팀이랑 함께 섹션을 꾸몄는데 책방약방팀에서는 처방했던 약과 처방했던 책에 간단한 메모용지를 붙여서 함께 전시했다.
책은 총 50부의 책이 나왔다. 난 내 책만 3권 가져갈 줄 알았는데 수료생들의 책들도 세권씩 얻는 방식이었다. 13명의 수료생들의 모은 책들을 한데 모은 두꺼운 책 세권. 얇은 책자들을 한데 모으니 두께도 무게도 상당해졌다. 수료식이 시작 전에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고무줄로 고정했다. 함께 나눠주는 떡과 빵 이것저것 주워먹고 다른 팀 엽서 캘리그라피와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걸 도와주고 그러다 보니 금새 수료식 시간이 다가왔다. 간단한 토크쇼와 책, 커피, 영상 제작소가 한데 모여서 짧막한 소감 한마디씩 나누면서 끝이 났다. 최근 들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여름에 만나서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이곳 저곳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책 만드는 것도 배우고 인디자인 같은 프로그램도 다룰 수 있어졌다. 다만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은 부끄러운 결과물이 나와서 방방거리며 자랑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한바퀴'를 주제로 책을 만들기 위해 보냈던 그 시간은 먼 훗날에도 엄청나게 뿌듯하게 기억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의 꿈을 위한 첫 단추가 될지도 모르니까.
폴라로이드 핫플이 생겼다. 사진 담당이었던 나는 덕분에 바빠졌다. 우연찮게 앉아 찍은 곳에서 엄청난 인생샷이 나와버린 것! 수료식이 끝나고도 사진 한 장 한 장 찍다가 수료생들과 단체사진도 찍고 꽃다발을 하나씩 안고 그러다보니 짐이 엄청 늘어버렸다. 가는 길은 내 5개월의 동반자 리와 함께했다.
2.
혼자 죽기 싫다는(?) 이유로 혼자는 외롭다는 이유로 리에게 이것 저것 꼬드겼었다. 졸전에서도 내가 같이 진행팀은 디자인으로 들어가자고 꼬드겼고 책제작소도 청년인문살롱도 나의 추천으로 리와 함께 했다. 리에게 내가 들었던 에디터 스쿨도 추천해 겨울에 리는 내가 여름에 그랬던 것 처럼 서울을 왕복하며 들으러 갈 예정이다. 리는 내게 덕분에 알찬 학기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덕분에 많은 것들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나도 리 덕분에 함께할 수 있어서 혼자라면 더더욱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 시간 동안 더더욱 단단해진 리와는 달리 난 여전히 제자리만 빙글 돌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어떻게 주어진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겠어 싶겠지만 어떻게 보면 난 내게 찾아온 기회를 리보다 더 활용하지 못한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도 분명한게 리는 졸전 디자인 팀장을 맡아 나와 다른 팀원언니가 의지를 많이 했고 이번에 인디자인을 첫 수업 듣자마자 졸전 도록 편집을 시작해 90% 이상을 도맡아서 했고 (디자인은 다른 팀원 언니가 맡았고 나는 거들었다) 그 결과물은 역대급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흡사 셋이 모여 어벤져스라고 역대급 팀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마친 디자인. 짧은 시간 내에 많은걸 완성해야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팀원들을 잘 만난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방학때는 독립 책방 지킴이 기회도 얻기도 하고 그 밖에 모든 결과가 나와는 달랐다. 졸전에 서로 맡았던 전시섹션도 책제작소의 책의 퀄리티도 나와는 월등히 다르다. 리는 어쩌면 내가 이렇게 보냈으면 하는 이상의 시간을 마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비교하면 안 되는거 잘 아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 어딜가서도 잘 할것만 같고 단단한 리와는 다르게 난 이번에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한해를 보내고도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기분이 들어버리니까. 물론 이런 마음은 리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다가오는 2월에 졸업하고 리는 반학기를 더 다니게 된다. 학교 외로워서 어떻게 다니냐는 말에 내가 학교 자주 놀러가면 되지~ 웃으면서 반년동안 나와 함께해준 리에게 그 동안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했다. 늦어버린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엄청나게 미뤄진 선물) 지난 시간을 함께해준 리에게 고맙다. 덕분에 리와 더 친해질 수 있었고 리에게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나도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자까야에서 오뎅탕에 닭꼬치에 술 한잔씩 하면서 못다한 회포를 다 풀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진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이상형에 관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강제적인 술자리는 싫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술자리. 혼자 즐기는 술은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이 약한 나는 도수 약한 과일주 조금 마셨다고 금새 취해버려서 이내 방방 들떠버렸다. 짧은 시간에 엄청 마셔서 그런가. 미니미니 술자리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는 미식거리는 기분도 들어 갑자기 불안해졌다. 원래는 술도 깰겸 근처 대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고가려고 했는데 들고 있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이내 그렇게 헤어졌다. 아니 그렇게 헤어지려고 했는데 내가 정말 그때 술에 취했나보다. 밖에 디피되어 있는 옷이 예쁘다는 이유로 보여달라고 아무 옷가게에 들어가 하나 고르고 다른 옷도 고르고 총 10만원 어치의 옷을 카드로 긁고 왔다. 리가 뭐라 한소리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결정장애라서 하나의 옷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걸리는 내가 5분도 안되서 그만큼 질러버렸으니까. 열심히 입고 다녀야지. 근데 정말 객관적으로 너무 귀여운 옷이라서 한 눈에 반해버렸는 걸.
3.
그렇게 수료식을 마치고 들어가는 길이 행복했다. 5개월 동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도 즐거웠고. 이게 정말 내게 있어서 행운의 첫 단추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