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렸을 때는 생일이 1월 1일이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 스스로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인 것 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내게 생일 들으면 어떻게 생일이 그럴 수 있냐고 되물어보았고 그럴때면 괜히 으쓱 했었다. 이래저래 신정이 생일이라는건 해가 새로 시작하자마자 생일이라는건 내게 있어서도 특별한 일이었다. 가족들과 TV 앞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보내는 생일. 생일 축하해 대신에 새해 복 많이 받아가 더 익숙한 미역국 대신 떡국을 먹는게 좀 더 자연스러웠던 내 생일. 엄마는 내가 고춧가루 팍팍 뿌린 콩나물 무침을 좋아한다고 내 생일이면 항상 콩나물 무침을 해주셨다. 잠에 막 깨서 비몽사몽한 얼굴로 생일상을 맞이하는 건 또 다른 행복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지 내게 있어서 생일은 더 이상 설렘도 특별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오바를 하면서 전 신정에 태어났답니다(신정에 태어난 특별한 아이랍니다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을 하지도 않는다. 해가 지날수록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도 줄어든다. 한때는 내 생일 특별한 날이니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어라는 생각도 한 적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냥 내 생일이다. 새해 첫날이다하고 덤덤하게 지나간다. 이렇게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제제와 함께 보냈다. 밥집-카페-쇼핑 정석대로의 코스를 밟고 행복한 생일 보내~ 새해 복 많이 받아~ 이젠 내년에 보겠네~ 내년에 봐~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쏟아지는 졸음에 세수도 못하고 잠이 깜빡 들어버렸다. 두시간 정도 잘 줄 알고 알람도 따로 맞추어 놓지 않았는데 네시간 이나 잠들어 버린 것. 자고 일어나니 신년 카운트 다운도 제야의 종도 끝나있었다. 가족돌을 향해 나 좀 깨워주지 하는 눈초리를 쏘아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머쓱하게 거실로 나가 엄마 옆에 앉아 멍을 때리면서 시상식 수상 풍경을 보았다. 아빠만이 우리 생양 생일 축하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를 하며 잠이 깬 나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2019년 새해 첫 날. 보통은 그래도 해가 넘어가는 순간엔 항상 깨어있었는데 잠이 들어버린 건 첨이라서 어쩐지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2.


낮잠을 많이 자버린 덕분에 새벽에 내내 깨어있었고 덕분에 오전부터 힘들었다. 친할아버지의 생일이 올해는 1월 2일이라 공휴일에 잠깐 생일 축하겸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자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생일날도 공휴일 버프를 받아 방콕하며 보냈을텐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남동생은 지금 유럽 여행을 간 상태고 여동생은 과외 준비를 해야한다는 핑계로 둘 다 빠지고 나만 부모님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목포 북항 횟집에서 푸짐한 스끼다시와 함께 (사촌 동생이 스끼다시 접시만 32개라고 세었다. 두 테이블니 두배) 광어와 우럭회 한접시. 엄마는 따라오지 않는 여동생한테 약올리자면서 사진을 보내라고 했지만 막상 내가 사진 찍는 시늉을 하니 진짜 보내는건 아니지 라고 염려했다. 전 그냥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미 스끼다시만으로 K.O 해버려서 막상 회는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먹어버렸다. 다음으로 나온 매운탕은 손도 대지 못했다. 위가 줄어든건지. 


횟집 뒤에는 바로 바다가 보여서 밥을 먹고 내가 바닷가에 잠깐 들렸다고겠다고 하니 집에 가는 길에 들리자고 하며 다시 할머니댁에 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바다에 들리지 못했다. 새해 첫널의 바다를 보지 못한게 아쉽다.) 할머니 댁에서는 할아버지 생신 기념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노래 하고 배도 부르겠다. 등도 따숩겠다. 늘어지게 한숨 잤다. 잠에서 깨서는 할머니댁 바로 옆의 초등학교 운동장 한바퀴를 돌았다. 할머니댁은 어렸을 때 부터 방학때 주로 가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궁금했었다. 여긴 어떤 학생들이 다니는걸까? 그리고 내가 단 한번도 다니지 않은 학교 조차도 내게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소 감상적인 기분으로 다시 차에 올라탔다. 


3.


새해 첫날 같지 않은 첫날. 생일 같지 않은 생일. 신정에는 신정다운 생일이면 생일다운 메뉴얼이라도 있는걸까? 그렇게 새해 첫날이라서 의미를 짓고 싶은 소란스럽지 않은 날이 지나갔다. 2019년. 아직은 낯선 숫자처럼 느껴진다. 다소 고비가 있었지만 지난해를 뜻 깊다고 생각했던 것 처럼 이번해도 내게 뜻 깊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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