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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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잠자기 전에 잠오라고 읽을만한 책은 절대 아닌 것같다. 잠이 확 깨고 완전히 책에 몰입하게 되는 카페인 같은 책. 읽는 내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걸까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굉장히 긴 책이지만 길다거나 늘어진다는 느낌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읽는데 시간은 좀 걸린 것같다. 시간 날때마다 틈틈히 읽긴 했지만 페이지수가 페이지수인 만큼... 정유정 작가의 책은 소재나 문체가 내 취향이라서 예전에 몇 번이나 읽을려고 시도 했었는데 항상 중간 쯤 읽고는 내용을 까먹어버리거나 반납일이 다되서 매번 읽는데 실패하기 일수였다. 7년의 밤도 작년에 읽을려고 빌려두곤 프롤로그만 읽고 반납. 사실상 정유정 작가의 책은 처음 읽은 거나 다름 없는데 뭐랄까. 읽는 내내 굉장히 느낌이 좋았다! 책 뒤의 소갯말인 뒤돌아보지 않는 힘 있는 문장, 압도적인 서사란 말에 끄덕끄덕 하게 되는...!

 

대강 이야기는 7년전의 서원과 7년후의 서원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다른 책에 비해서 화자가 굉장히 자주 바뀌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그런가 책의 주인공도 서원이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엔 화자가 자주 바뀌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었는데, 각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세령호 사건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수밖에 없었다. 또한 소설과 현실, 현실과 꿈에 경계도 되게 애매모호하다고 해야할까. 승환이 쓴 소설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어떤게 실제이야기이고 어떤 것이 소설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등장인물은 영제. 영제의 시점으로 보는 세령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며 영제의 입에서 나오는 '교정'이라는 단어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읽는 내내 이새끼는 사이코패스 아닌가? 싶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뭐라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어딘가가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묘하게 영제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어서. 현수가 갈수록 미쳐가는 남자라면 영제는 처음부터 미쳐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제 정신을 갖고 사고하기에는 다들 불행하고 어두운 상처들을 하나씩 지니고 있어,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옹호하게 된다고 해야할까. 가정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이란 캐릭터에 대해선 애정이 마구 샘솟았고 현수 같은 경우는 그냥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를 옭아맨 용팔이의 존재는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 아무튼 어딘가 조금 뒤틀려있고, 정상은 아닌 것같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매력이 흘러 넘쳤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서원은 타구를 크게 휘둘렀다고 생각해도 될까? 책을 다 읽은 후 프롤로그의 앞 문장인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라는 문장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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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내게 자유를 주었다. 해저의 어둠속에 가만히 몸을 웅크리면 세상의 한숨에 사라졌다. 그곳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고, 누구의 손길도 미치지 않고,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의 절대벽이었다. p27

 

  물속의 시간은 조류만큼이나 변덕스럽게 흐른다. 때론 세 살짜리가 모는 세발자전거 같고, 때론 폭주족의 오토바이 같기도 하다. 아틀란티스의 시간은 마술사의 손이었다. 손 한 번 휘두를 짧은 순간에 1시간이 소맷부리 속으로 뭉텅, 사라졌다. 체온은 위험수위로 떨어졌도 살갗의 감각이 거의 사라졌다. 시야는 물결과 상관없이 흔들렸다. 기분이 위험할 정도로 들떴다. 질소마취에 걸려들고 있다는 경고의 신호들이었다. p68

 

 

이건 여담인데 7년의 밤이 베스트 셀러라는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몰랐는데 영화화도 진행중 인 것같고, 네티즌 리뷰도 천건이 넘고 내가 읽은 책같은 경우는 초판 6개월 만에 28쇄째인 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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