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구
국내도서
저자 : 시마다 소지 / 현정수역
출판 : 블루엘리펀트 201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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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이래서 청춘열혈야구소설인줄 알았는데 뒷면에 한편의 미스터리라고 소개되어있어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타라이 탐정은 대부업체로 인한 자살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의뢰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도무지 야구랑은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워서 어떤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그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느낌이고, 짜임새가 있다기보다는 미스터리 치곤 너무 우연에 기댄듯한 느낌이였는데...

 

2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아니 뭐 그럼 어때라는 식으로 마음이 바꼈다.

저는 어릴적에 야구밖에 모르는 소년이였습니다로 시작되는 한 남자의 고해는 아버지의 자살. 빚. 프로 야구를 향한 꿈. 유망주. 프로데뷔 좌절. 실업야구. 2군. 2류. 베팅볼 투수등등 그의 한 평생을 야구로 바친 나날들의 나열들이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한번쯤 봤을 법한 플롯들. 그럼에도 이야기에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른 말로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적절한 완급조절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작가의 연륜이 묻어나는 부분이였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되고 자연스레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마지막 최후의 일구를 던졌을 때 그제서야 아하-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사건의 모든 실마리가 정리가 되었다. 그 마지막 일구는 정말로 '최후'라는 단어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에서도 제대로 시합에 뛰지 못한채 방출되는... 나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 많은 선수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최후의 일구는 언제였을까, 그러는 나는 한 번이라도 절실한 적이 있었을까.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를 뛴다고 해도, 피토를하고 손톱이 깨질정도로 노력을 한다해도 타고난 천재성 앞에선 당해낼 수 없는 프로의 세계의 잔혹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해야하나. 야잘잘(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이 괜히 명언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좌절하더라도 닿는데까지 다시 일어서자고. 아무리 노력해서 되지 않는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좀 만 더 해볼껄-이라는 후회는 하지 말자고.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이 고교생시절부터 동경하고 존경하는 천재타자 타케치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과정도 인상깊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굉장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리더격은 다른 리더격인 친구와 허물없이 지내긴 힘들다고 하더라도, 당시 주인공 다케타니가 별볼 일 없었음에도 다케치는 그와 친구가 된다는게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다케치의 외적인 부분 뿐만아니라 내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둘이 친구가 되지 않으면 이야기가 전개가 안되는 부분도 있기도 하고. 나중에  그런 요소가 다케치가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를 더 돋보이게 했으니까. 

 

이건 내 편견일지도 모르는데 사람 이미지라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처음에 주인공이 186cm에 체격도 다부지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었었는데 그가 좌절을 겪으면 겪을 수록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내안에서 유약하고 연약한 이미지만 남게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책 너머서까지도 느낄 수 있는 다케치의 오라도 한 몫했다. 성향도 기질도 완전히 다른 두 남자를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는데 다케타니는 다케치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끊임없이 감탄했지만 난 다케타니도 그에 못지 않다고 오히려 다케치보다도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다케치의 그늘을 자처하는 다케타니를 보고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시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다른 쪽으로 연상이 되서... 땀내나는 우정...

 

시마다 소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 전작에서 미타라이 탐정이 어떤 활약들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1장에서 짧게 그의 조수(?)격인 이시오카와 대화하는 걸 보고 둘이 만담하는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확실한 건 그는 매력적인 캐릭터다라는 것이다. 시마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어졌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려고 생각중이다. 책 앞부분에 기름종이 같은 것에 꼭 친필로 쓴 것같은 '한국의 독자분들께'란 메시지도 인상적이였다.

 

그리고 일본의 8,90년대에는 대부업체나 사채, 이자제한법등의 문제는 끊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이 소설은 아베 미유키의 화차를 떠오르기도 했다. 실제로도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책이기도 하고. 

 

아무튼 내 취향에 딱 맞은 책을 읽은 것같다. 타석에서 일구일구 묘사하는 것도 그렇고 미스터리보다는 한편의 야구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 나도 모르게 그래, 그렇게 고시엔에 가는거야!라고 말도 안되는 응원을 하게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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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만이 인생이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만, 저에게는 야구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p98

 

제각각인 관중의 감정과 어떤 종류의 악의로 구장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악의는 특히 투수를 향한 것처럼 여겨져 공포심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게임의 승패보다 제가 점수를 왕창 내줘서 프로 세계에서 매장되는, 그런 재미있는 볼거리라도 기대하는 듯해서 고대 로마 시대의 검투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p154

 

저는 뼛속까지 2류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보낼 제2의 인생도 분명 2류로 끝마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것에 긍지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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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