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국내도서
저자 : 헨리 마시(Henry Marsh) / 김미선역
출판 : 더퀘스트 2016.05.06
상세보기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난 무수히 많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났다.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난다. 주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으러갈 때 항상 담당 교수님 옆에는 새로운 얼굴의 레지던트가 앉아있는데 그때 나를 담당하셨던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지금 쯤 뭘하고 계실까하는. 잘 지내시고 있을까? 지금은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대게 한 병동에 레지던트 3-4명이 4개월 동안 머물면서 순환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담당 레지던트쌤이 체온을 체크 했고 점심시간 전에 교수님을 필두로한 회진을 매일같이 맞이했다. 


그 때만 해도 내 하루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근황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게 의사 입장에선 다시는 환자를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퇴원한 지 10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가 다시 입원한 줄 알고 명단 보고 깜짝 놀랐었다고 한 적이 있었다. 동명이인은 아니지만 나이도 같고 병명도 같고 이름이 비슷한 환자가 들어와서 나 인줄 알았다고. 그 해프닝으로 연이 되어 지금 까지도 서로 의지하며 그 친구랑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진짜 병원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아니 입원했던 환자의 입장에서도 좋게 퇴원한 줄 알았는데 다시 병원에서 얼굴을 보게 되면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가 없다. 


병원에 오래 머물면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았었다. 평생 입원도 해본 적도 없고 아파본 적도 없었고 주위에 아픈 사람도 없어서 질병 자체에 무지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질병을 겪어보고 피부로 느껴보고 매일 같이 무수히 많은 환자들을 눈으로 보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픈 사람이 가장 잘 안다고 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전에 내가 보았고 직접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실제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질병과 죽음의 세계에서 보내는 의사라면? 의사라면 뭐가 다를까? 


이 책은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외과의사라는 타이틀을 지닌 헨리 마시가 써낸 수필이다. 저자가 학부생 시절 부터 25년 경력의 신경외과 전문의가 되기 까지의 겪었던 여러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 모든 입원 환자의 명단을 훑어 내려갈 때 즈음 내가 B여사 이야기를 꺼냈어. 내가, B여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 양반이 뭐라는 줄 알아? B여사? 그게 누구지? 이러는 거야. 이미 까먹은 거지. 나도 그런 기억력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한 듯 말을 이어가다가 나를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위대한 외과 의사는 기억력이 나쁜 경향이 있다네.” 


나는 내가 괜찮은 외과 의사이길 바라지만 위대한 외과 의사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또는 기억한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 사례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가 신경외과 최고의 권위자로서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어떻게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성공했다는 성공담이 아니다. 대부분 자기반성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가 잊고 싶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또는 잊어서는 안 되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의사와 환자라는 형식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가 결정을 내리기 까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그리고 그 결정의 무게를 느끼면서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초연함과 연민 사이에서, 그리고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외과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것이다. 뇌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내 실패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책으로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서로가 느끼는 인간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_서문 중에서 


47
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