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국내도서
저자 : 신경숙
출판 : 문학동네 200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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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러진 않겠지.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최악에 결과에 다다랐다. 흔한 사랑이야기,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그녀가 살았음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렴풋이 행복해질 수는 없을것같다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했다. 어째서였을까. 그녀가 행복해질 수 없을거야란 생각이 들었던 것은.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가 한몫했다. 


사실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으며 그녀를 사지로 몰아내게 했을까. 불우한 가정환경에 태어나서 단 한 번,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산. 분명 그것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스치듯이 지나가는 관심에게도 큰 의미를 부여하게되고, 그녀를 집착하게 만든다. 사랑 받고 싶다는 감정을 말이다. 사진작가의 '사랑해도 되겠소?'란 물음은 그녀가 마음속에 가둬두고 있었던 불완전한 어린시절에 느꼈던, 그러나 온전히 갖지 못한 욕망에 불을 붙였고 이러이러한 전차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은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못을 박는다. 단지, 누군가 자신을 관심으로 애정으로 보듬어주길 원했을 뿐이였는데. 다가오는 현실들은 그녀가 견디기엔 가혹한 것들이였다. 작가 후기에 산에게 누구보다 애착이 간다는 걸 보고 역설적이기만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울한 소설로 자주 거론이 되길래 각오는 하고 읽었는데 그냥 가슴이 답답해졌다. 바이올렛이라는 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내게 바이올렛은 이런 느낌으로 기억될 것같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같은 오산으로 말이다.


그리고 수애, 남겨진 수애의 마음은 어떨지. 수애가 자꾸만 가슴에 밟힌다.



간혹 내가 나쁜 인간이다, 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속이 뒤틀려 있을 때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해지는 건 둘째 치고 나증에는 서성거리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아 가슴팍을 방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속상함이 다스려지지 않으니 몸이 자근자근 아픈 것이다. 나쁜인간이란 마음에 그리움이 생길 수 없게 하는 인간이다. 머리는 터질 듯하고 어깨죽지가 져려오며 다리에 힘이 쭉 빠져버린다. 하루를 엎드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일주일을 엎드려 있기도 한다.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너무 멀리 나온 길을 이제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고독이 움틀 때까지.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내 속을 상하게 한 대상을 나 역시 가슴속에서 펑 소리가 날 때까지 상하게 하는 그런 인간이었구나, 를 깨닫는 건 덧없고 서글프다.


더구나 매번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끔찍하기조차 하다. 이미 알고 있으니 한 번은 건너뛸 법도 하고 가벼워질 법도 한데 여전히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 앞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 내 마음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 외부와 연결된 전화선을 빼놓는 것, 그 소극적 차단을 여태껏 치료법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당신은 잊었지? 그날 밤 내 소매 없는 자줏빛 실크 블라우스 밑의 팔뚝에 돋아 있던 좁쌀만한 소름들, 그 걸 쓰다듬어주었던 일을 당신은 잊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를 기억할까.


쓰라린 종아리와 일렁이는 바람 속에서 스쳐가는 기억들. 내가 졌는데 왜 내걸 나눠 지는 거야? 잊고 있던 남애의 목소리. 내가 좋아? 라고 묻던 그 목소리. 세월이 흘러 지금, 느닷없이 당신을 이렇게 마음에 품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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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