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짜 신기하다. 최근 들어 기분 좋은 일이 계속 생긴다. 오늘 프로그램을 마치고 카메라 들고 출사할까 싶어서 전당 주변을 기웃기웃거리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재작년에 졸업하신 선배님을 만났다. 해외에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 긴가 민가 했는데 먼저 아는 척 해주시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근황을 나누었다. 현재는 광주에 지내면서 전당에서 일을 하시고 계신다고 그랬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카페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내가 뭘 하고 있느냐 부터 시작해서 내 진로 계획에 대해서도.
언니가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너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정말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가 정말 그쪽으로 밀고 나갈거라면 내가 아시는 분한테 나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자기는 너무 바빠서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그것까지 병행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못했었다. 그분이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했는데 마침 너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소개시켜주고 싶다면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언니랑 두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지에서 일했던 이야기부터 언니가 지금 일을 하기까지의 이야기. 어떻게 경험을 쌓았는지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가야하는지... 전공 수업에 대한 이야기 졸전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하는지도... 이렇게 종종 만나 이야기 하자면서... 나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나중에 타지로 가게 된다면 그때도 서로 이렇게 만나며 지내자고 하며 헤어졌다.
2.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내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전공을 들으면 들을 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나는 적성이 전혀 맞지 않은 사람 같았다. 교수님은 내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고 교수님이 하시는 별 생각없는 말이 내게는 정말 큰 상처로 다가왔다. 전공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다른 동기를 보면서 마음이 정말 복잡해져 왔다.
난 정말 뭘 할지 모르겠어. 뭘 할지 모르겠으니 대학원에 진학해야하는 건가? 아니면 부모님 말씀대로 공시를 준비 해야하는건가? 도피성으로 워홀을 다녀올까? 부모님 둘 다 공무원이셔서 얼굴 볼 때마다 너 대체 어떡하려고 그러냐. 지금부터라도 공시를 준비해야하는 거 아니냐. 몇 번이고 그 소리를 나에게 하셨다. 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라. 그러나 그렇게 도피성으로 준비해서 잘될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나 같은 의지박약인 사람에게는... 그런데도 나한테 진로를 강요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 부터가 숨막혔다. 아빠는 매일 아침 출근 준비하면서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강제로 깨워서 하루를 일찍 준비하라고 부지런하게 살라고 한소리 하고 가셨다.
그래서 미래진로에 대한 물음은 항상 부담스러웠다. 요즘 뭐해? 졸업하면 뭘할거야? 그런 물음 자체가 숨막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막힘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낼 수 있다. 그게 너무 신기하다. 엊그제만 해도 고민이 많았었는데. 그냥 하고 싶은 일, 목표가 생겼을 뿐이고 그 일에 관심을 가졌을 뿐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뜻하지 않은 기회가 자꾸 생긴다. 나도 다른 기회를 찾기 위해서 나름대로 끊임 없이 노력하게 된다.
3.
지금 생각해보면 작년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얼결에 전시를 기획 했던 것이 정말 컸다. 당시에는 왜 갑자기 우리에게 이걸 하라고 하지?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전혀 예고도 하지 않았고 거의 막무가내로 하라고 강요 했으니까. 결과물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남들한테도 보여주기 민망하다. 그러나 그때 되게 느꼈던게 많았다. 내가 직접 작가들을 섭외하고 작가들과 소통하고 작가들의 작업노트를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고 내가 섭외한 작품들의 연관성을 남들 앞에서 소개하면서 왜 내가 그 작가들과 작품들을 섭외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감을 느꼈다. 그게 진짜 짜릿했다. 그런 짜릿함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지금의 목표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단순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걸 잘 알다. 지금 먹었던 마음도 순식간에 없었던 일이 될 수 있고 언제 또 달라질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한 가지 길만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도전하는 것에 실패했을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하고 내가 목표로 하는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경우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 해야한다. 지금은 일단 그것에 대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지만 확신은 되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정말 많이 부족하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최근 여러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그래도 전공자인데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으니 입을 떼지 못하니까 부끄러웠다. 오히려 전공자가 아니라 예술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오히려 그쪽 분야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많은 자극을 느꼈다. 내가 정말 우물안 개구리도 아니였구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분과 프로그램을 같이 듣는다는 것만 알고 서로 얼굴만 익힌 상황에서 동선이 비슷해서 우연찮게 자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수업 끝나고 나가는 길에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같은 학교였고 그분이 내가 자주가는 단골 카페에 처음으로 왔는데 내가 그분이 오신걸 발견했고 전시회에서도 만났다. 우연도 세 번이면 인연이라고 세 번째 만남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이렇게 여자 번호만 늘어난다. 둘 중 한명이 남자였으면 굉장히 설렜을 상황 아니냐면서 ㅋㅋㅋㅋㅋㅋㅋ 그 분은 동시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커뮤니티 운영자이면서 잡지 기획자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뵈었을 때도 잡지를 붙잡고 있었고 그분과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되게 느낀게 많았다. 생각했던 일을 실천으로 옮긴다는게 대단하고 멋져보였다.
4.
방학동안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꾸준히 생각해보고 실천해가야겠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나가는 기분! 사실 방학 때 하고 꼭 싶었던 것은 도슨트 활동이었다. 윗 선배들도 많이 했었고 뭔가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게도 이번에는 전시 도슨트를 따로 모집하는 게아니라 전당 직원으로 대신하는 분위기 같다... 흑흑 정말 아쉬워...
지금의 마음가짐을 변치 않고 이어나가고 싶다. 지금의 목표는 그렇다.
5.
정말 오늘 카메라 들고 나가면서 벌써 렌즈 캡을 잃어버렸다,,, 잠깐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언제 빠진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렌즈 캡을 따로 파나 하고 찾아봤는데 엄청나게 비싸다... 멍청비용 시발비용...
벌써부터 불안불안... 이번 카메라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잃어버릴까봐 겁이난다 ㅠㅠㅠㅠ 벌써부터 이래버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