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껏 내가 읽어 왔던 책 중에서 가장 적나라하고 외설적인 책이다. 난 살면서 이정도로 적나라하게 동성 섹스를 묘사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은유적으로 비유한다거나 자고 났는데 아침이 되었네 이게 아니라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손짓 몸짓 언어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과장 하지 않고 책의 절반 이상이 그런 내용이다. 알거 다 알면서 충격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런 책이 정식으로 출간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더 큰 세상 대한민국.
책은 주인공 까미유를 제3자인 이름도 없는 누군가가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마치 그 인터뷰어를 독자로 설정한 듯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꼭 내가 까미유를 인터뷰하는 느낌? 내가 정말 면전에서 까미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면 정말 질렸을 것 같다. 질릴 정도로 자신의 사랑을 가감없이 표출한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따다가 자신의 사랑인 텔레니에게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성경에 그리스 신화에 시인 철학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텔레니를 인용하고 묘사한다. 그리고 그런 까미유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정말 불쾌했던 주인공이다.
불쾌했던 것은 동성애적 요소가 당연히 아니다. 책에는 강간과 같은 트리거 요소가 잔뜩 들어있다. 까미유는 텔레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가 다른 여자랑 섹스하는 것을 관음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저항하는데도 강간하고 동성애자면서 그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주는 포주짓까지 한다. 내가 정말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불편한 전개가 가득이었다. 여성에 대한 질투로 여성 혐오적인 표현도 서슴없이 내비친다. 진심으로 요즘 같은 시류에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그 이야기가 '옮긴이의 말'에도 들어있었다. 지금에는 정말 불편한 책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서 읽어달라고...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전개 능력이다. 도무지 어떻게 전개 될지 궁금해서 불편함에도 글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론은 내가 결말까지 읽기를 정말 잘했다는 점... 결말이 무지 내 취향이었다.
까미유를 싫다 싫다 하면서 읽고 있었다. 그런데 텔레니의 공연을 보고 나와서 자신과는 어울리는 세계가 다른 텔레니를 보면서 그리고 거리에서 남색을 구걸하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까미유에게도 추파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사랑이 마치 그들과 다를거 없지 않나...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니는 마치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하고 밀당하는 것 같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바라봐주지도 않고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끓으려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텔레니가 까미유를 발견한다.
"놔! 놔! 왜 죽지도 못하게 붙잡았어? 이 세상은 끔찍해. 내가 왜 이 지긋지긋한 삶을 계속 끌어가야해?
"왜? 나를 위해서."
이 뒤로는 정말 작가가 최대한으로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하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아름답다...'라는 형용어가 제일 잘 어울린다. 중간에는 알고 싶지 않은 그시대 특권층의 오락거리 그런 내용도 있었는데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보통 나는 구원 서사의 스토리를 사랑한다. 까미유가 생을 마감하려는 장면에서 텔레니가 등장했던 장면을 보고 약간 구원 서사로 이루어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까미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장면과 대비되는 장면이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말에서 오히려 까미유가 생의 의지를 다잡는 그런 장면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계속 내내 생각이 났다. 그만큼 여운이 깊은 결말이었다.
텔레니의 원제는 텔레니 or 동전의 이면이라고 한다. 직역하자면 동전의 이면이고 관용적으로는 사물의 이면 혹은 뒷면. 옮긴이는 책에 서술된 이야기를 통해서 이성애의 이면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제목 자체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뒷 부분의 옮긴이의 말도 흥미롭게 읽었다. 익명으로 출간된 외설적 동성애 소설. 그리고 그 소설이 오스카 와일드가 썼다는 것이 밝혀지기 까지의 과정. 어떤 어떤 작품을 인용했는지 되게 섬세하게 적어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
큐큐는 읻다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 나오기는 힘들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책을 출간하기 위해 설립한 출판사라고 한다.
이런 작지만 특별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라고 책을 만들어 왔어요. 큐큐도 이런 연장선에 있어요. 퀴어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퀴어문학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라니...!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큐큐를 접했는데 이들이 출간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 우리가 지독히 악하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악한 모습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곳 지상에서 도둑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는 정직이 우리와도 함께할 겁니다. 더욱이 우리는 마음이 맞는 동지들과 다정히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이 그렇게 두려운 곳일까요? 바닥이 안 보이는 구덩이로 들어간다 해도, 자연이 지옥에 맞게 창조한 이들에게는 그곳이 낙원일 뿐이겠죠. 동물들은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에 불평할까요? 아니,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천사로 태어나지 않았따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