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낯선 사람
국내도서
저자 : 메타디자인 연구실,봄알람,자율디자인랩,옵티컬레이스,일상의실천
출판 : 홍디자인 20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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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문화역 서울 <안녕, 낯선 사람> 국제 심포니엄 전시 도록으로 전시를 통해 디렉터와 디자이너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 정식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것도 도서관 신간도서란에서 고른 책!!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요즘 들어서는 이런 코너도 들여다 보게 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공공디자인' 이라는 단어에서 깊은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그랬던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만들어주게 된 책이다. 작년에 전시를 보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만 남는다. <안녕, 낯선 사람>은 옛 공공디자인을 탈피하고 오늘날의 새로운 공공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전시로 '새공공디자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새공공디자이너들의 자신만의 가치관이 담긴 작업물들을 전시했다. 책의 앞 부분에는 21세기의 공공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으며 어떤 관련 법이 제정되었고 어떤 디자인의 흐름을 보여주었는지 도표로 정리하여 공공디자인의 이해를 도왔다. 





기획 의도


  바람이 불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의 바람! 그 바람은 늘 같은 세기로 불었던 게 아니다. 처음 5여 년 간은 말 그대로 광풍에 가까웠다. 하지만 2010년을 지나면서 공공디자인의 바람은 급속히 잦아드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광풍이 공공디자인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면, 최근 몇 년간의 미풍은 공공디자인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을 반영한다. 지난 10여 년간의 공공디자인은 성공했을까? 공공디자인에 몸담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공한 공공디자인은 수많은 보고서 속 영혼 없는 문장들과 연출된 이미지에만 존재할 뿐이다. 

  공공디자인은 디자인과 공공성에 대한 빈곤한 이해를 토대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개별적 도시미화 사업이 되어버렸다. 이름으로 표현되는 개별적 도시미화사업이 되어벼렀다. 그 사업마저도 공공성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없는 이들에 의해 수행되면서 공공디자인의 이름으로 공공성을 훼손하고, 특정한 미적 취향과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녕, 낯선 사람>은 지난 10여 년간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새로운 공공디자인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대한 법률' 제정으로 다시 공공디자인이 이야기되는 시점에서 지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새로운 공공디자인은 공공재나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공디자인이라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공디자인은 거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공디자인이라 불리는 것들 안에도 공공디자인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은 무수히 존재한다. 새로운 공공디자인은 일상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가치 중심의 디자인 실천으로서, 확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훼손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생태적 가치, 문화적 가치, 역사적 가치 등을 회복하려는 실천적 디자인 활동이다. 그 활동의 주체는 새로운 공공디자이너들이다. 새로운 공공디자이너는 누군가가 마련해놓은 문제에 조형적 답을 수동적으로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 속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며, 창조적 대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하는 실천적 디자이너의 이름이다. 

  <안녕, 낯선 사람은> 새로운 공공디자인의 실천 사례들을 드러냄으로써 공공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공공디자인 주체를 호명함으로써 공공디자인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획이다. 


오창섭

<안녕, 낯선 사람> 총괄 디렉터

 


공공디자인의 출현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de-sign korea :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 

이 전시를 통해 여권,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서식, 가판대, 가로시설물 등과 같은 공공재나 공공시설물이 공공디자인의 대상으로 처음 다루어졌다. 당시만 해도 디자인은 주로 기업 생산물을 통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조형행위로 이해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재나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한다는 상상은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것이었다. 


공공디자인 이후의 공공디자인, 다시 말해 새로운 공공디자인은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얼핏 낯설어 보일 수 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의 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린디자인이나 유니버설디자인이야말로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정의된 대표적인 디자인 정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린디자인 '그린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디자인 실천이다. 유니버설디자인도 유니버설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으로 신체적 약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는 가치 중심의 디자인이다. 


관광은 오배송으로 가득 차있다. 미술관을 보기 위해 파리에 가는 것도, 바다를 즐기기 위해 푸켓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어떤 목적지에 관광을 가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여행 전에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들과 조우하거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관광의 모습을 지적 호기심의 모형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단다. 친구와 적을 나누고 커미트먼트(관계, 참가)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사고와 거리를 두고, 다양한 지역과 화제를 무책임하게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적인 방식이야말로 나에게는 철학이나 비평의 출발점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러한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 겐론이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책을 출한하고 토크쇼를 개최하고 있다. '디자인, 여행, 낯선 사람'이라는 오늘의 강연 테마로 바꿔 말하자면 '낯선 사람'의 시점을 늘리기 위해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있다. <관광객의 철학>의 내용은 실천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그동안 공공디자인에서 구호로만 존재했거나 소홀히 해왔던 사회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사회는 서로 다른 취향, 가치, 삶의 방식 등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서로 다른 취향이나 가치, 삶의 방식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전체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타자 관계에 자리하는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인정 속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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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죠.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반가움을 표시하는 용어이기도 하고, 헤어질 때 던지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안녕'이라는 표현을 통해 기존의 공공디자인하고는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안녕을 고하는 주체는 새공공디자인이고, 새공공디자이너들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진행형이니까 더 기다려봐야 될 것 같아요.


보는 사람에 따라 동일한 대상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 같아요. 권준호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전시에서 주목한 게 바로 '다름'의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행사에서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었던 것이 '다름'이거든요. 기존 공공디자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하지 않았던 거예요.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 혹은 소통이 어려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나 소통이 쉽지 않은 대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타자'라 할 수 있습니다. 타자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 문화, 역사도 타자일 수 있어요. 저는 디자인의 이름으로 그런 타자들과 관계하거나, 타자와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디자인 작업들을 전시에 초대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새공공디자인을 새공공디자인이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건 저희가 디자인 자문이나 디자인 심의위원으로 갔을 때하고 실무를 수행하는 디자이너로 갔을 때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는 거예요. 심의위원으로 갈 때는 선생님, 선생님 하다가 디자이너로 왔다면 거의 반말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지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거예요. '새공공디자인'의 지향점이 너무 거대한 얘기가 되다 보면 정작 현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변화가 없을 거 같다는 두려움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책에서든, 이렇게 디자이너들끼리 모이는 자리든, 더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고 대안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맞습니다. 뭔가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겠죠. 그런 맥락에서 그들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가 새로 생기면 넙죽 받아먹고 떨어지는, 그리고 또 던져주길 바라는 그런 분위기! 이제는 거의 관습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이런 분위기, 태도, 이해방식은 의지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순간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다른 탈주선을 그려 나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저는 디자이너가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디자인으로 사회적 실천을 한다면 그것도 분명히 공공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공공성을 매개로 자본주의 폐해들을 치유하는 실천이라면 국가는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디자이너가 그런 활동을 한다면 공공의 이름으로 충분히 격려하고 장려하는 것이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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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공공디자인 매니페스토 


1. 공공디자인은 수면을 다했다. 애초의 문제의식은 간데 없고, 공허한 스타일과 구호만이 공공디자인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2. 그러한 공공디자인은 권력을 탐하거나 경제적 이득을 좇는 디자이너들의 활동 무대로 전락했다. 기만과 득단이 그럴듯한 수사 뒤에 숨어 요동친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공성을 실현해야 할 공공디자인이 오히려 공공성을 파괴해버리는 암울한 미래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그 동안 정부나 공공기관에 기생하면서 사익만 추구했던 디자이너들은 새공공디자인의 주체가 아니다.


4. 기생은 새공공디자이너의 윤리일 수 없다.


5. 새공공디자인 주체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며,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적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은 서로 공명하며, 가볍고 발랄한 몸짓으로 실험하고 도전한다. 


6. 새공공디자이너의 무기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이다.


7. 새공공디자이너는 비판적 시선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타자들의 편에서 아파하는 것들의 아픔을 같이 느낀다.


8. 새공공디자인은 정치의 미화가 아니라 디자인의 정치를 추구한다. 새공공디자인은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따라 그럴 듯한 풍경을 연출하는 미화 활동이 아니라, 삶에서 공공성을 구현하는 총체적 실현인 것이다. 


9. 새공공디자인이 지향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나 권력이 아니다. 확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훼손된 생태적 가치, 사회적 가치, 문화적 가치, 역사적 가치이며, 그러한 가치를 현실화하려는 디자인적 실천이 새공공디자인을 새 공공디자인이게 하는 것이다. 


2017년 11월 10일

새로운 공공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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