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국내도서
저자 :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 김현우역
출판 : 반비 2016.02.11
상세보기


  중간에 프랑켄슈타인을 이야기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이 러시아 인형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끝과 끝에서 가운데까지 같은 제목의 주제로 상관을 이루는 순환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에세이임에도 그런 것을 고려하고 쓴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각각의 글에 대한 제목을 이어지게 붙인 것인지 궁금했다. (살구 - 거울 - 얼음 - 비행 - 숨 - 감다 - 매듭 - 풀다 - 숨 - 비행 - 얼음 - 거울 - 살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물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읽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알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춘다. 이야기는 다른이의 마음에 감정이입하는 것이라고 감정이입이야 말로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연대라는 것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 하면서 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 본인이 겪었던 경험들을 나열 하면서 내가 그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마치 내가 겪은 것 처럼 이입 하면서 읽게 된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 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로 인해 생긴 변화들을 이야기하고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옛 집에서 엄청난 양의 살구더미를 받으면서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라는 고민은 어머니와의 불찰을 해결하게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욕망을 딸에게 투영했었고 딸이 가진 재능을 시기하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곱셈같은 존재였지만 딸은 나눗셈 같은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절대로 어머니처럼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던 순간도 있었고 어머니와 그럼에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애써서 닮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자신을 거울로부터 삼으려던 어머니에게 자신이 거울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연약하고 날 것인 어머니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더 진실하게 알게 되었던 과정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머니로 끝을 맺게 된다. 그 이야기의 여정 동안 저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도 함께 담겨있다. 저자가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들. 아이슬란드 이야기나 본인이 유방암을 겪었던 이야기. 자신에게 영향력을 준 작품과 같은 이야기들... 에세이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가 소소한 일상의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고 이러한 문장들을 보면서 나도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통찰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으로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글쓰기가 처음에는 침묵으로 시작 되었더라도 한 명 한 명 독자가 늘어나면서 글을 쓰면서 저자 본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고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다고. 저자가 처음에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이유도 여기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쩌면 별 거 아닌 나는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에겐 연대이고 고독을 이겨가는 과정일 수 도 있다. 제목인 '멀고도 가까운'은 역시 거리 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그 대상과의 정신적인 거리는 결코 멀지 않는? 이런 것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매번 읽는다 읽는다 하고 미루다가 날잡고 읽었는데 정말 책이 너무 좋았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저부 올해 안에 읽을 예정...! 


-



* 우리 대부분은 각자의 삶을 고통을 피하기 위한 여정에 비유하거나, 혹은 그렇게 이야기하도록 배웠다. 최종 목표가 의미나 명예 혹은 경험을 얻는 것이라면, 똑같은 사건이 작은 승리가 될 수도, 목표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은 중요하다. 개인이란 집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집 안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그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 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 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이다. 이 듣는다는 행위 말이다. 이는 당신이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당신의 고유한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게 당신의 우주에서 그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 어쩌면 '용서'란 말은 엉뚱한 곳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용사란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에게 주는 것이니까. 당신은 오래된 괴로움이라는 추한 짐을 내려놓고, 끔찍한 것과 이어져 있던 끈을 풀어 버리고, 거기서 멀어진다. 용서란 공적인 행동, 혹은 두 당사자 사이의 화해지만, 용서가 마음속에서 벌어질 때 그 과정은 좀 더 불명확하다. 갑자기 혹은 서서히 무언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마치 어떤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넘어선 것만 같다. 그러다 그 무언가는 그것에서 벗어난 당신 스스로를 축하하려는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삶 하나는 이야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47
MYOYOUN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