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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기이며 시고, 독특한 페소아적 감각록이며 형이상학이고 편지이며 기록이자 묘사, 부조리와 모순과 권태의 송가, 그리고 가장 슬픈 예가이기도 하다.
- 옮긴이의 말
불안의 서 보다 먼저 불안의 글을 읽었다. 불안의 글은 불안의 서에 실리지 않은 글들을 엮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부록 같은 책인데 불안의 서 봄날의 책 버전은 책이 두꺼워서 읽는 게 염두가 나지 않았다. 비교적 분량이 적은 책을 먼저 선택해서 읽어보았다.
순수한 꿈 혹은 백일몽을 글로서 풀어내며 불안에 대한 원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했다. 형이상학이라는 게 아직도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불안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올바른 몽상의 예술에 관하여라는 파트가 가장 인상깊었다. 마음만 같으면 옮겨 적고 싶다. '모든 일을 뒤로 미루어라.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일은 결코 오늘 해치우면 안 된다. 모든 종류의 행위는 무익하다. 오늘 행하거나 내일 행하거나 상관없이'로 시작한다는 파트2나 모든 것은 허망하다고 꿈은 모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어쩌면 삶에 대한 네거티브한 이야기의 나열과 뜬 구름 잡는 완벽한 꿈을 꾸는 법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더 힘이 되는 것 처럼 느껴지는 묘함...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이것은 최상의 미학을 갖춘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믿음도, 신도 없는 상태로. 신은 나 자신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이런 삶의 방식을 추구했던 페소아가 더 궁금해져왔다.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거구나... 싶었던...?
글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불안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우울하다. 그렇지만 읽은 입장에서는 반대로 벅차오름을 느꼈다.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의 내면은 우울 했을지는 몰라도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풍경이 삶의 휘광이 되고 꿈은 오직 스스로를 꿈꾸는 것에 불과한 시간 동안, 사랑하는 이여, 나는 내 불안과 고요 속에서 버려진 집의 열린 문에 도달하듯이 이 기이한 책에 도달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이 책이 아름다우며 무용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믿게 만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재와 심연으로 흘러간다.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재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해를 입히지도 않는다. (・・・) 나는 이것을 내 영혼으로 썼다. 이것을 쓰면서, 쓰는 것에 생각했다. 오직 슬픔에 잠긴 나만을 생각했다. 오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당신만을 생각했다.
이 책이 부조리하므로,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이 책이 무용하므로, 나는 이것을 당신에게 건넨다. 당신에게 준다. ・・・
<기둥으로 둘러싸인 회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