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량이 약할 뿐더러 몸에도 받지 않고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 두피나 약한 피부에 두드러기가 남)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도 숨막혀한다. 심지어 맛도 없다. 1학년 MT를 가기 전에 같은 조인 윗 선배가 혹시 술 마시면 안 되는 친구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했고 난생 처음 듣는다면서 그런것도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내가 분위기를 깬다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렇게 대답한 걸 후회했던 것 같다. 그냥 술자리에서 분위기 맞추고 마실 때만 적당히 빼면 되는 걸... 그래서 알레르기가 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고 하고 가서 억지로 마셨던 것 같다...

사실 첫 음주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서 더 술을 마시는 걸 꺼리는 것도 있다. 첫 음주는 중학교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고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에서였다. 주량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소주 두 잔을 별 생각 없이 연거푸 마셨고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헉헉댔다. 그제서야 엄마 아빠도 술이 약했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유전의 신비다. 숨가빠히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바로 알쓰냐며 웃으면서 깍두기 취급을 해주었지만 불행히도 내 증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근처의 바시락 거리는 낙엽들을 보고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친구들의 말에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웃겨서 눈물나 ㅋㅋㅋㅋㅋㅋㅋㅋ에서 웃겨서 눈물나 ㅠㅠㅠㅠㅠ로 바뀌었다. 웃겨서 우는거야 슬프지 않아... 거리며 웃다가 울었고 그 울음은 진짜 울음으로 번지고 이내 소리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야 말로 가지가지...) 친구들은 그런 내 꼴을 보고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양 팔에 한팔씩 잡고 입에는 초코에몽을 물리고 두 정거장 거리인 내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그 길에서도 난 울음을 그치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았다,,,

그 뒤로 당연하게도 친구들이 술자리에 날 부르지 않거나 내가 술에 손 만대려고 해도 막는다. 그래서 더 술을 멀리하는 것도 있겠다. 이런게 경험을 해놓고 술을 받아주는대로 마셔서 1학년 때 과대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과대한테도 못 볼 꼴을 보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잠깐 눈을 붙이고 목이 말라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깜짝 놀랐다. 부재중 전화로 20통 넘게 찍혀있는 것이다. 회장 부회장 윗학번 과대 동기 할 것 없이... 대체 뭐지? 너무 무서워졌다. 내가 뭔갈 잘못했던 걸까? 기억이 끊긴 것 같지는 않은데... 바로 걸려오는 윗학번 과대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나를 데려다 준 과대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도 않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과대를 마지막으로 본 당사자인데 나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집에서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났고 과대는 나를 학교 후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것까지 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걸로 안다고 답했고 윗 학번 과대 언니는 나보고 크게 신경쓰지 말고 쉬라고 했지만 과대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나라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히 나 데려다준다고 나와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이 너무 되었다. 


다행히도 과대는 미술대학 건물 화장실 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화장실 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그 일은 다른 미술대학 다른 과에도 이야기가 퍼져버려서 한동안 과대는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그일이 괜히 나 때문에 생긴 것 같아서 더 신경쓰였던 것 같다. 


이렇듯 첫 술을 마신건 그렇게 유쾌하기만 한 기억은 아니었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 술잔 바꾸기 스킬이나 최대한으로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뺄 수 있는데 새내기 때는 많이 어리바리 했었다. 받아 주는 대로 마시더라도 다행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개지는 증세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권하지 않았기도 했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나이지만 언밸런스 하게도 할아버지는 막걸리 주조장을 하신다. 고백하자면 성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네 막걸리를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다. 다만 할아버지 막걸리를 받아와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한다. 


2.


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보니까 너무 길어졌다. 이런 내가 어쩌다 수제맥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것이다. 

저번 달에 만났던 선배와 약속을 잡아서 밥도 먹고 근처 갤러리도 보았다. 언니가 나한테 ACC에서 수제 맥주만드는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함께 가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함께하기로 한 사람이 이번주에는 못나와서 언니는 그 사람 이름으로 나는 언니 이름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그랬다. 술이 약하고 술을 사실 좋아하지 않아서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랬다. 하지만 언니랑 그대로 헤어지기도 아쉬웠고 언니도 정 아니다 싶으면 나와도 되니까 가보기만 하자고 권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홈 브루밍 수제맥주 만들기 2주차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맥아와 보리를 직접 먹어보면서 이론적인 수업을 듣었다. 보리는 씹어지지 않는데 맥아는 엿기름 향이 나고 고소한 견과류 느낌의 맛이었다. 어떻게 맥주를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 배웠다. 이론을 배우고는 실제로 리얼 에일을 이용해서 맥주 만들기를 체험했다. 맥주가 만들어지기 전 리얼 에일의 맛은 군고구마 꼬다리(?) 부분 맛 없어서 버리는 부분의 달면서도 쓴 맛이라 신기했다. 직접 통 안에 에일을 부었다. 팔의 각도가 중요하다면서 자세를 강사님이 잡아주었다. 꿀렁꿀렁 에일이 통안으로 들어갔다. 남김 없이 붓기위해서 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두 어번 더 부었다. 에일을 계속 젓고 18도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찬물을 계속 넣었다. 이전에 부은 물이 뜨거워서 인지 쉽게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온도를 낮추는 건 발효되어지기 적정 온도이기도 하고 높은 온도는 세균을 번식시키기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낮춰지지 않은 온도 때문에 적정 온도보다는 좀 더 높게 계속 진행했다. 통 안의 외부 공기가 들어가지 않고 통 안의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 에어락을 채워주어야 했다. 이때 강사님이 질문 했다. 물의 비중은 1이다 그렇다면 수제 맥주의 비중은 몇 일까? 비중계로 비중을 확인시키고 우리보고 맞추어보라고 했다. 비중계를 보는 법을 낯설어 5, 50의 대답이 가장 많았다. 다시 한 번 물의 비중을 1이라고 하고 다시 맞추어 보라고 그랬다. 이때 내가 손을 들어가 1.05라고 답했다. 언니도 옆에서 나를 따라 1.05라고 답했다. 정답이었다. 정답 선물로는 18년산 술과 16년산 술이었다. 나와 언니 둘 다 그렇게 받아갔다. 다음 주에 증정을 한다고 그랬다. 처음에는 정답을 맞추고 선물까지 받았다는 생각에 신이났다. 그렇지만 난 술도 좋아하지도 않고 이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등록한 것도 아닌데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다. 양심이 너무 찔렸다. 프로그램을 같이 듣는 언니의 동료분은 농담으로 다음주에 선화씨가 안오면 제가 받아간다고 그랬다. 프로그램도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이번주만 듣기에는 아쉬운 기분이었다. 


언니도 얼결에 나를 따라 답했는데 정답을 맞춘 셈이 되어버려서 자기도 양심이 찔린다고 둘 다 받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받은 기분이라면서 다음주에 받은 술을 프로그램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마시자면서 프로그램 시작 전에 사람들이랑 간단히 맥주 마시자고 맥주바를 만들자고 그랬다. 주최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그렇게 기분삼아 간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음주도 함께하게 되었다. 언니랑도 다음주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주에는 이번에 만든 술을 직접 마시게 된다. 어떤 맥주가 만들어져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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