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에 여행 일정과 겹쳐서 레지던시 첫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이번이 작가님들과는 첫 만남이었다. 이미 어떤 파트를 맡을 지 다 정해진 상태고 지난주 참석 못한 작가님과 내가 함께 짝이 되어있었다. 2시에 회의가 시작되는 걸로 착각해서 백운동 쪽에서 환승하기엔 버스 배차 시간이 너무 오래 남아서 택시를 잡았다. (실제 시작은 3시였다.) 화순 읍내도 아니고 도곡 넘어서 사람이 많이 가지 않은 곳이라서 택시를 잡는 게 기사님에게 죄송했다. 카카오 택시로 호출했는데 다행히 금방 잡혔고 시외로 나가는 거라서 기존 택시비 보다 더 택시비를 지불하고 도착했다. 함께하는 다른 친구한테 전화를 하자 3시인데 왜 이렇게 일찍 도착했냐고 물었다. 환승하려고 백운동에서 내렸을 때 전화할 걸 후회했다. 이렇게 또 멍청비용을 지불...


전화를 받은 친구도 다른 언니랑 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한 걸 보고 서로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1시간 반 이래버리니까 일찍 나섰는데 잘 맞아 떨어져서 금방 버스가 온 것이었다. 그렇게 전시관 내에 있는 테이블에서 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관장님도 다른 작가님들도 2시 반에 다 모였다. 기존 시간 보다 일찍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전라도 내에 있는 작가들과 신진 큐레이터가 협업하여 이루어지는 전시인 만큼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아직 작품들이 완성이 되지 않아서 정해진 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작품을 전시할 지도 어떻게 구성할지도 어쩌면 우리의 몫이라고 하셨다. 리플렛도 디자인 업체를 연결까지는 해주지만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보여주어도 상관 없다. 틀이라고는 없는 전시이니 무엇을 하든 상관 없다고 우리를 복돋아주었다. 어쩌면 졸업전시보다 더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전시가 될 수도 있다고... 일단 가장 먼저 필요한 게 작품에 대한 원고이니 원고가 어느정도 진행되는 8월 중에 한 번 더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각자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


내가 맡은 작가님은 사실 나 같이 졸업도 하지 않았고 보여줄 만한 게 없는 애가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한국 내 어떤 미술 장르에 한 획을 그으셨던 분이셨다. 개인 사정으로 10여년간 작품활동을 쉬고 있었고 기존에 성공 했던 작품 방식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작품 방식을 선보이고 싶어하셨다. 난 신진 작가와 신진 큐레이터(이 명칭도 사실 나한테는 엄청난 부담이다)가 함께하는 전시인 줄 알고 있었고 신진 작가님과 함께해도 엄청난 부담이었을텐데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부담감이 만발이었다. 글을 쓰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쉬운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작가님은 해석이 필요 없는 글을 원하셨다. 자기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기 작품에 대한 많은 글을 받아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은 편지 같은 글이라면서 전혀 부담갖지 말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 참여하고 있는 현미관에서도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공공 기관의 권위적인 글이 전시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닌가? 매번 인용되는 철학자의 글이나 여러 어려운 인용구들과 예술 개념들... 전시를 접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주제에 대한 전시를 선보일 때 철학적인 인용과 예술 개념 없이 추상적인 주제를 설명하는 게 더 어렵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항상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작가의 글을 쓰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더 그렇다. 이미 이전에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아도 철학 개념을 인용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이 있었다. 내가 그런 것 없이 작가님 작품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술적으로 접근하다기 보다는 좀 더 일상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인지...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치만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있어보이는 척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진솔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가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큐레이터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작품에 대해서이다.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항상 한겹의 포장이 되어있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관람객들은 잘 알지 못한다. 작가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팔리는' 작품을 의식하면서 만들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어딘가 모난 부분이 있고 거친 작품들에 더 애착이 간다고 하셨다. 그런 작품이야 말로 작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이고 어쩌면 그런 것이야 말로 신이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다면서... 


작가님의 말을 듣고 박연준 작가의 산문집 소란의 한 구절이 생각 났다. 


  나는 기울어진 것들만 골라서 사랑하는 유별난 취미가 있고, 그것은 천성이나 성격과 관계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방은 서쪽, 사람은 어깨가 한쪽으로 조금 기운 사람, 꽃은 말없이 피고 지는 모든 꽃, 꿈은 파닥이다 사그라지는 꿈이 좋다. 

  서쪽 방에서 기울어지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달 속에 음지식물을 기르는 기분과 조금은 비슷할지 모른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기울어지는 모든 것들의 목뒤에, 입술을 대고 싶어진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적어도 8월 중순까지는 글의 방향을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쓸지 작품을 어떻게 디피할지도 생각을 끝내나야 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 된다. 그래... 글이 써지지 않더라도 무엇이라도 일단 써봐야지...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완성되지 않을까?하며 낙관적으로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더 내게 찾아온 전시 기회를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47
MYOYOUN SKIN